푸앵카레의 <과학의 가치> 중에서

우리 활동의 목표는 진리 탐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활동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나 때로 진리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우리는 또한 진리가 흔히 잔인하다는 것을 알며, 오히려 착각이 더 큰 위안이 되고, 심지어 더 큰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게 된다. 왜냐하면 착각은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진리를 알면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유일하게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진리는 첫 번째로 과학적 진리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도덕적 진리도 염두에 둔다.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도덕적 진리의 일면에 불과하다. 내가 이렇게 공통점이 없는 두 가지를 동일한 이름으로 묶는 것이 언어의 오용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증명되는 과학적 진리는 느껴지는 도덕적 진리와 결코 유사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없고, 누구든 그것들 중 하나를 사랑하면 나머지 하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 진리를 찾거나 과학적 진리를 찾으려면 영혼을 선입견과 격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야 한다. 반드시 절대적인 진실성(sincerity)을 갖추어야 한다. 이 두 종류의 진리는 발견되면 동일한 기쁨을 준다. 그 진리들 각각은 동일한 광채의 빛을 발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거나 눈을 감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진리들은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들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아직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며, 그것들을 추구하는 자는 영원히 휴식을 알지 못할 운명이다. 그것들 중 하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나머지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무엇보다 먼저 결과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 두 진리를 유사하게 본다. 우리가 그것들을 똑같은 이유로 사랑하고 똑같은 이유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Poincaré, Introduction, The Value of Science, trans. G. B. Halstead